중국여인들의 전족 (Chinese Women's Foot Binding)
지금은 사라졌지만 당왕조가 무너진 후 5대 10국시절인 1100년경부터 시작되어 1902년 황제의 칙령으로 금지되기까지 800년이상을 수십억 중국여인들의 40%에 달하는 인원이 3m 길이의 천으로 자신들의 발을 동여매게 되어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었던 전족은 외국인들에게 가장 이해하기 힘든 관습이었다. 이상적인 여성의 발모양을 길이 10cm 폭 5cm라고 권장해서 발가락이 발바닥에 완전히 짓눌리고 뒤꿈치가 많이 휘게 되었다. 부모들은 여자아이가 아직 뼈가 유연한 시기인 5살을 전후해서 면으로 발의 옆 측면과 셋째, 넷째 및 새끼 발가락을 안쪽으로 굽어지게 단단히 감아버렸다. 이를 반복하면 그 소녀가 긴 막대기나 다른 사람들의 도움없이 걷기란 거의 불가능하였고, 전족을 한 여인들은 평생동안 발에 통풍이 잘 되지 않아 염증에 자구 걸려 무척 고통스러웠다고 전해진다.
중국의 성문화에는 이처럼 조그마한 발이 대단히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이따금씩 여성의 결혼 지참금은 전족의 크기에 의해 좌우되곤 했다. 또한 아내의 발 모양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남편뿐이었다. 중국에서는 여성 매춘부들이 전족을 한 것과 마찬가지로 동성애를 제공하는 여장 남자 매춘부들도 전족을 했다.
이 관습에 대한 기원은 아직까지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가설에 따르면, 11세기 선천적으로 내반족 (발이 아주 작았던) 타키 왕후가 모든 궁정 여성들에게 자신의 발 모양에 따르라고 하는 포고령을 내린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이외에 역사학자들은 과거 연꽃 무늬 양탄자 위에서 춤을 추던 궁중의 무희들에게서 그 기원을 찿고 있다. 이런 궁중 무희들을 부러워하던 다른 여성들은 자신들의 발 크기를 줄이려고 애썼다.
이러한 분위기는 점차적으로 전국적인 유행으로 확대되었다. "남편들은 얼굴보다 발 모양에 더욱 관심을 두었다." 이는 30년간 중국에 머물던 J.J. 마티뇽 박사가 남긴 기록이었다.
전문가들은 비정상적으로 뽀족하게 튀어나온 발과 위로 들려 올라간 뒤꿈치로 인해 허벅지가 발달하면서 엉덩이가 통통해진다고 주장했고, 사람들은 흔히 질 근육이 강화된다고 말했다. 19세기 러시아 주재 중국대사였던 순무한은 "전족을 한 여인들은 질의 근육이 끊임없이 발달하게 되는데, 이런 여인들과 사랑을 나눈 사람들은 그 무엇보다도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쾌감을 느낀다."라고 주장했다.
전족을 하지 않은 여인들은 미인축에 끼지 못해 결혼조차 힘들었고, 어렵게 시집을 가도 남편으로부터 무시와 냉대를 받고 사회적으로도 이상한 별종으로 여겨져 정상적인 생활이 힘들었다고 전해진다.
남편들의 성적노리개로서 중국여인들에게 극심한 고통을 안겨주고 평생 앉은뱅이의 삷을 강요했던 전족이라는 악습은 마침내 사회주의 혁명과 함께 마오쩌뚱에 의해 그 잔재가 소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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