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인디언의 죽음 :: 누리마루

어느 인디언의 죽음

Posted by 에릭대디
2019. 2. 8. 10:32 역사

수백년전 어느날!

아메리카를 방문한 백인들은 손에 총과 성경책을 들고 인디언들 앞에 나타났다.

백인은 강자였고 그들의 욕심은 법이었습니다.

 

'인디언'이란 단어는 우리에게는 슬픈 이미지를 전합니다.

아메리카에 최초의 주민으로서 평화롭게 살아가다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백인들의 폭력과 기만에 의해 삶의 터전을 빼앗겼고 정체성마저 잃고 최하층 계급으로 전락해버린 슬픈 종족, 이들이 바로 인디언입니다.

서양의 기독교적인 입장에서는 인간개종을 시켜야 할 야만인이었으며 이교도로써 살륙은 정당화되었으며 심지어 인디언사냥을 영웅담으로 기록하기까지 했지요.



현재는 도시로 진출하거나 척박한 땅으로 밀려난 인디언들! 

보호구역의 후손들조차도 이젠 더이상의 전통적인 삶의 방식을 고수하는  인디언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진취적인 정신을 상실한 세대들은 자괴감과 피해의식 속에서 자살과 알콜 중독, 도박과 음란으로 고통 받고 있습니다.

그렇다고(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는) 선조들처럼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하지도 않습니다.

연방정부의 입장에서는 인디언들이 낙후된 삶과 정신상태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 다루기가 편하겠지요.

그들이 단결된 모습을 보이면 골치가 아플 겁니다.


 

수우족(SIOUX)의 대추장!

(그의 이름은 앉은 황소 Sitting Bull 시팅 불 입니다.)


"우리 부족이 원하는 삶은 자유로운 삶이다. 백인의 집이나 철도 또는 옷이나 식량, 그 어떤 것도 나는 원치 않는다. 내가 원하는 것은 우리 방식대로 광활한 대지를 자유롭게 옮겨 다니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1883년5월10일 대추장 타탕카 이요탕카 (수우족 대추장 앉은 황소, 시팅 불의 연설중에서)


1870년대 블랙힐즈에서 금이 채굴되자, 미국연방정부는 인디언의 영토였던 수우족 보호구역을 차지하려 했다.

적장은 조지 암스트롱 커스터 중령으로 남북전쟁에서 빛나는 전과를 기록한 장수였다. 그는 샤이엔족 마을을 습격하여 인디언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커스터는 마커스 리노 소령과 1개 대대 병력씩을 나눠서 수우족을 침략하였다.

(남북전쟁의 영웅 커스터 중령은 그 당시에 인디언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수우족에게는 절대 지도자  타탕카 이요탕카(앉은 황소, 시팅 불)가 있었다.

검은 말에 오른 앉은 황소, 시팅 불은 전사들을 독려했다. 


“나가 싸워라. 용기가 너희를 구원할 것이다. 힘을 내라!"

결과는 3일간의 전투에서 1개연대의 미군이 전멸되었다.


하지만 지루한 공방전은 수우족에게 결코 이롭지 못했다.

수우족에게는 미군과의 전쟁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수우족에게 가장 중요한 식량이자 필수품을 공급해주는 절대적으로 중요했던 버팔로의 숫자가 감소되는 것이 위기감을 가져왔다. 계속되는 배고픔과 미군의 끊임없는 공격에 지친 앉은 황소, 시팅 불은 사람들을 데리고 1877년에 캐나다로 거처를 옮겼다.

그렇지만 믿었던 캐나다 정부도 미국의 거듭된 항의와 갈등으로 이를 해소하기 위해 떠돌이로 전락한 수우족을 거부하게 되었으며 수년간의 떠돌이 생활로 부족민들은 계속 굶주렸으며 굴복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부족의 자유를  얻고자했던 앉은 황소, 시팅 불은 결국 굴복하고 만다. 

 

그러던 어느날!

앉은 황소, 시팅 불은 어린 아들인 까마귀발에게 장총을 주어 미군에게 전달했다. 무기를 넘기는 것은 항복을 의미했다. 이 때 "나는 내 총을 넘기는 우리 종족의 마지막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는 말을 남겼다.



인디언의 1888년 수우족 법안은 ‘수우족 보호구역’을 6개의 보호구역으로 분리하고, 각 보호구역은 거주민 모두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토지를 나눠주고 나머지는 정착민인 백인들에게 나눠준다고 명문화했다.


앉은 황소, 시팅 불은 이 법안이  미국정부가 부족민들의 단결을 약화시키고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깨트리기 위한 획책이라는 것을 깨닫고 극구 반대했다.


그 후 미국연방정부는  이 법안마저 지키지 않았으며, 수우족을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거주를 제한하여 농사를 짓게 하고 기독교인으로 개종시켜 그들에게 복종을 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전통을 하루아침에 버려야 하는 인디언들에게 미래는 암담한 것이었다. 



인디언이 추구한 이상적인 삶의 가치를 추구하던 앉은 황소, 시팅 불은 1890년 12월 15일 종족을 배신한 인디언 출신 경찰들에게 살해당했다. 

안타깝게도 열네 살 소년인 그의 아들 까마귀발도 그날 죽었다. 


앉은황소, 시팅 불이 유일하게 믿었던 백인 친구이자 캐나다의 관리였던 제임스 월시는 앉은 황소, 시팅 불의 사망 소식을 듣고는 슬퍼하며 이렇게 말했다. 

“역사는 앉은 황소, 시팅 불보다 위대한 인디언은 없었다고, 그야말로 수우족의 진정한 선지자였으며 법이요 왕이었다고 우리에게 말할 것이다.”



수우족의 특징

 

당시 수우족은 강하면서도 너그러웠다고 한다.

그들의 특별한 인성에 관심을 가졌던 정신의학자 에릭슨은 그들과 함께 생활을 해본 후에 그들의 교육탓으로 결론을 내렸다.

신생아가 태어나면 초유를 먹이지 않았다고 한다.

세상이 힘든 것을 태어나자마자 체득하는 것이다.

다만 친족들이 신생아를 위해서 야생과일과 약초로 쥬스를 만들어 먹였고 산모의 젖이 많아지면 자유롭게 먹이다가

이유식단계가 없이 아기가 스스로 외부에서 찾아먹을 때까지 수유가 진행되었다고 한다.

친족들의 도움으로 공동체를 체험하고 봉사와 희생은 그들을 강하고 너그럽게 만들었다.